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시네필도 아닌 내가 벌써 4번째 부국제를 찾고 있다.
그냥 밖에만 있어도 기분 좋은 10월. 약간은 쌀쌀해진 날씨에 영화를 매개로 야외를 돌아다니며 일상과 잠시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숏폼이 대세인 시대, 나 역시 긴 영상을 보기가 무척 힘들다. 넷플릭스보다는 유튜브에 손이 가고, 진득하게 볼 영상보다는 다른 활동을 하며 곁들일 반찬 같은 영상을 찾게 된다. 이런 시기에 부국제에 오면 하루 최소 2편의 영화를 진득하게 보게 된다. 재미가 검증되지 않은 영화를 집중해서 보고 나면 머릿속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올해는 한글날 연휴가 끼어 있어 2박 3일 동안 6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함께 간 ji도 영화와 영상을 꽤나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그렇게만 시간을 보내도 만족스러웠다.
애써 찾아온 부산에서 달리기도 못하고 맛집도 찾아가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지만, 이렇게 특별한 테마로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더 진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본 영화를 금방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간단히 기록을 남겼다.
첫 번째 영화: 〈야생 참나무의 꿈〉(이란) ⭐️
영화제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보지 않았을 영화다.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 저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오랜만에 생생히 느낀 시간이었다.
두 번째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덴마크) ⭐️⭐️⭐️⭐️
최고였다.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의 행동 패턴과 그 주변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다시 볼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보고 싶을 정도다.
세 번째 영화: 〈빵과 책〉(이란) ⭐️⭐️⭐️
제목이 귀여워서 눈길이 갔던 영화. 먹을 것을 줘야 학교에 오는 학생들과, 학생들이 와야만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비정규직 교사의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보는 내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떠올랐다. “교육 서비스가 제공되는 이유는 선생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급여를 받기 위한 이기심 때문이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중진국 수준은 된다고 생각했던 이란에서도 저런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네 번째 영화: 〈약속된 공간〉(캄보디아) ⭐️
이것도 영화제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보지 않았을 영화다. 캄보디아 영화계를 배경으로, 주거를 매개로 사회적 불평등을 말하려 한다는 주제는 영화 시작 10분이면 파악된다. 그런데 영화다운 서사도, 다큐 같은 생생함도 없었다.
다섯 번째 영화: 〈바이올리니스트〉(싱가포르) ⭐️⭐️
내가 좋아하는 싱가포르가 배경이라 졸지 않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더 처절하게 겪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서사가 다소 순한 맛으로 느껴졌다.
여섯 번째 영화: 〈15/18〉(프랑스) ⭐️⭐️⭐️
마지막 영화였고, 꽤 늦은 시간에 피곤한 상태로 다큐 영화를 봐야 한다니! 분명 졸겠구나 싶었는데, 생생한 현장감과 빠른 전개 덕분에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평소 생각하던 정신병동과는 완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규율이 느슨한 사회라 우리보다 개인의 일탈로 인한 사회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ji의 진단에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