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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진 매미를 구해줬다

  • 생각

요즘은 날씨가 너무 습해서 하루종일 에어컨을 틀고 있지만, 매미 소리는 마치 창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들린다.

토요일 아침, 소파배드를 접고 앉아 창문을 바라보니 창틀에 매미 한 마리가 뒤집혀 있었다. 이대로 사체가 굳어보리면 이걸 내가 치워야 하나 걱정하고 있던 찰나, 매미가 다리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몸을 뒤집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요즘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그 장면이 매미의 원초적인 의지로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매미 혼자서 몸을 뒤집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결국 내가 개입하기로 했다.

빗자루 가져와 창문 밖으로 내밀어 매미의 몸을 뒤집어 주었다. 매미는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영문을 몰라하며 10여 초간 멈춰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건너편 나무로 날아갔다. 매미에게는 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고등한 언어가 없겠지만, 만약 그들이 언어를 사용한다면 오늘 그 매미에게 일어난 일은 신의 개입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신의 개입이라는 설명이 어쩌면 틀린 건 아닐지도 모른다. 매미와 나의 지적, 신체적 격차를 고려하면 나는 매미에게 신과도 같은 존재일 테니까. 그러고 보면 옛날 사람들이 신을 섬겼던 것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현상을 가장 쉽게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지금도 왜 이렇게 종교는 강력하지?)

매미를 구해주고 나서 뿌듯한 마음에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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