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애플의 교육 할인 이벤트였다. 원래도 저렴한 교육 할인 가격에 아이패드를 사면 애플 펜슬 프로를 주고, 맥을 사면 에어팟 4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중고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새 제품을 얻을 수 있으니 도저히 구매욕을 참기 어려웠다.
우선 물망에 오른 건 아이패드다. 먼저 여자친구가 이벤트를 이용해 아이패드 에어와 펜슬 프로를 87만 원에 구입했다. 그사이 신제품이 나와서 8만 원 추가 할인까지 받았다.
나의 올드 모델인 아이패드 프로 11인치 1세대(2018)는 이미 수명이 다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명기여서 약간의 딜레이와 배터리 광탈만 감수하면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120Hz 주사율이 적용된 모델이라, 60Hz인 아이패드 에어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프로로 올리자니 지출이 너무 컸다. 그러자 관심이 맥으로 옮겨갔다. 좁은 원룸에 32인치 모니터는 과하다고 생각하던 차, 모니터와 맥미니를 정리하고 맥북 에어 M5 15인치 모델을 구입하자는 생각에 다다랐다. 돈 낭비도 그런 낭비가 없었다. 모니터와 맥미니를 팔아봤자 80만 원 남짓이었고, 추가로 100만 원 가까운 지출이 필요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러지 말고 미니멀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바꾸고 싶다는 갈망을 우선 ‘비움’으로 채워보기로 했다.
폭이 좁은 책상 위에서 32인치 모니터의 존재감을 줄이기 위해 주변에 여백을 주기로 했다. 안 쓰는 물건을 다시 가득 버리고, 책들을 책장으로 옮겼다. 책상 위 스탠드도 처분(나눔)했다. 텅 빈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여백이 생기니 숨을 쉴 수 있게 됐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금요일 밤, 청소를 마치고 오랜만에 맥주를 땄다. 90년대 영화와 함께 여백을 감상하니 물욕이 사라졌다. 비움이 물욕을 이겨낸 경험이다.
물론 아직 고민은 남아 있다. 내 아이패드도 8년이면 정말 오래 잘 쓴 것 같은데, 이 참에 주사율만 좀 참고 에어 M5로 저렴하게 바꿔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렇지만 뭐라도 사야 할 것 같던 그 불붙은 물욕은 다행히 한풀 꺾였다.